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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이야기

엄마가 암수술을 받으셨다.

by OneFineSpringDay 2016. 1. 20.

두 번째 논문을 여러 저널에 보내놓고, 세 번째 논문을 준비하답시고 기숙사에 버티고 있다가 허송세월 시간만 죽이다가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논문 핑계대며(현실적으로도 핑계일 수 없다. 다만 몸이 그렇게 움직여질지...)2주 간의 짧은 기간으로 티켓팅 해놓고, 새해 첫 날을 지나 둘째 날에 도착. 

엄마가 왠일인지 작은 집으로 올라고 하신다. 내가 좋아하는 회 먹으라는 얘기였지만, 회를 다 먹고도, 엄마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면서 집에 가자는 말을 안하신다.

엄마의 얼굴색이 예전과 다르다. 나이 들어 피부가 예전같지 않다고 하지만, 피부가 검어지고, 거칠어졌다..마른나뭇가지같다.

어깨를 짓누르는 스트레스, 부족한 영양섭취, 장시간의 비행, 시차..이 종합적인 요소들로 피로가 쌓일 대로 쌓여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도 집에 가자는 말씀을 안 하신다.

엄마,이상해..뭔일있지? 라고 했지만, 아무 말씀도 안 하신다.

그리고, 작은 엄마가 말씀하셨다. 엄마 얼굴 이상하지? 엄마 10월 말에 암수술 받으셨어. 불행 중 다행으로 유방암 초기라 절제 수술은 했지만, 수술도 잘됐고, 항암치료 잘 받고, 잘 관리하면 아무 문제 없을 거라고..

그 사이 엄마는 보이지 않으셨다. 내 표정을, 내 반응을 두려워해서일 것이다.

나는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담담했다. 무슨 소리인가..남 이야기하나 싶을 정도로..

그러다 엄마의 얼굴을 본 순간..조금씩 현실로 다가왔고, 엄마가 늘 쓰시던 모자 속 엄마의 머리가 항암치료 탓에 민머리가 되었음을 인지하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하지만 거기서 내가 손을 떨며, 통곡할 수 없었다. 내 감정에 치우치기에는 엄마 걱정이 앞섰기 때문에...울음을 삼키고, 내 불안과 공포와...그리고 내 논문 때문에 수술조차 알리지 않았다는 죄송스러움..그 외의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솓구쳐 정신을 놓아버리고 싶었지만, 그럴 만큼 이기적인 행동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안 하던 집안 일을 하고, 엄마의 간호를 하고, 내가 출국하는 주 월요일 엄마는 3차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하셨다. 엄마는 나의 간호 덕에 2차 때보다 훨씬 몸이 좋다며 연신 걱정말라고 하신다. 금요일 낮 출국이라 목요일 오후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

화요일 밤 병원에서 보내고, 수요일 저녁 짐을 싸기 위해 병원을 나서는데,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출국이고 뭐고 그냥 여기 있으면 안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 4년차만 됐어도 비행기 시간을 바꿨을 것이다.

그날 63병동 2호실에서 나는 엉엉 울었고, 6실 병동의 환자 및 보호자들은 나를 위로해주신다. 집에 가자 마자 엄마가 드실 오리탕을 찾아오고, 집안 정리를 하고, 냉장고 정리를 하고, 출국을 위한 짐을 쌌다. 밤 12시 울며 전화했다.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엄마랑 같이 자던 안방에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어 TV를 틀어놓고 거실 쇼파에서 울다 잠들다 다시 깼다. 새벽 4시에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뒤늦게 부재중 전화를 확인했지만, 잠깰까 전화를 안하셨다며.. 엄마도 못 주무시고 병원 이곳저곳 걸어다니시다 휴게실에 계셨다고 한다. 엄마에게 울며 아침에 가겠다고 했다. 

아침에 엄마 드실 오리탕을 팩에 한끼씩 담아 냉동실에 넣어두고, 마지막 정리까지 하다 보니 낮 12시가 됐다. 서울로 가는 버스 15시 20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동생과 함께 서둘러 병원으로 갔다. 내가 다시 가니 2호실 환자 보호자들이 놀래신다. 이렇게 다시 올거면서 그렇게 울었냐며 농을 하신다. 

다행이다. 그래도 그렇게 엄마 얼굴 다시 보니 마음이 한결 나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한국이 아니다. 딱 일주일 전...엄마 병실에서 울며불며 나왔다. 그 후로 일요일 엄마는 퇴원하시고, 다시 백혈구 수치가 떨어져 오늘 재입원하셨다.

힘을 내야 하는데..힘이 나지 않는다.

깊은 무기력증과 스트레스로 엄마에게 의지하고 싶고, 엄마의 말 한마디에 힘이 났는데, 이젠 힘들다 내색할 수 없으니 바람에 쓰러지는 마른 풀잎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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