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도 될 때
울어도 될 때가 있다. 혹시.. 울고 싶다면, 내 손을 잡아주고, 휴지를 건네주고, 흔들리는 내 등을 살포시 어루만져주는 그런 누군가가 존재한다면, 그래, 울어도 좋다. 그 세 동작을 다 해주지는 않아도 좋다. 그 중 어느 것 하나만이라도 해준다면, 나는 그 동안 참고 있던 울음을 쏟아내고 쓰러져 잠들고 싶다. 가만히 옆에서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우는 당사자에게 가만히 있는 사람의 존재는 그(녀)와 나의 사이에 벽을 세우고, 눈물이 나는 그 순간이 주는 불편함, 나약한 내 자신의 모습을 관객으로서 보게 되는 부끄러움을 몰려오게 한다. 그리고 서둘러 다시 사회적 인간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강박증을 깨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하나(혹은 몇몇의) ..
2019. 10. 7.